'살인자의 기억법' 리뷰
요즘 김영하 & 유시민 작가가 나오는 “알뜰신잡3”을 즐겨봅니다. 이분들이 복잡한 개념을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감동적입니다. 이 예능을 보면서 김영하 작가에 대해서 궁금해 졌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소설을 쓰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참에 김영하 님의 대표작인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어봤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마지막 반전은 제 경우에는 역대급이있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결과에 대한 공개 혹은 암시는 “살인자의 기억법“의 미래 독자에게는 연쇄살인과 같은 범죄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서는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한 스포일러를 최대한 조심하겠습니다.
연속해서 두 번 본 영화, 두 번 읽은 소설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결말이 가장 충격적이었던 영화는 “장화, 홍련”이었습니다. 동생은 환상이고 임수정이 다중 인격이기 때문에, 영화의 실제 인물은 아빠와 딸 두 명뿐이라는 사실을 영화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알았습니다. 이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바로 영화를 한 번 더 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볼 때 카메라의 구도, 각 인물의 대사, 감독이 왜 인물 배치를 그렇게 했는지 등이 다르게 느껴졌고 처음에 놓친 장면과 스토리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장화, 홍련”은 제게 영화를 두 번 보는 재미를 알려준 영화였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보면서 “장화, 홍련”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책도 얋고, 문장도 간결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열 페이지의 반전은 정말 역대급이었고, 그 반전에 놀라, 책을 다시 한번 더 읽었습니다. 빠르게 한번 읽고, 다시 곱씹으며 읽는 재미가 쏠쏠한 소설입니다.
처음 읽을 때는 소설 속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쉽게 술술 읽어나갔습니다. 개별적인 상황을 대충 짜맞춰 스스로 상황을 합리화시키며 소설을 읽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김영하 작가의 미끼에 딱 걸려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 정말 놀랐습니다.
두 번째 읽을때는, 앞에서 놓친 부분과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가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상황을 얼마나 쉽게 자기중심적으로 합리화시키고 왜곡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법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일인칭 시점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과거에 연쇄 살인마였습니다. 그리고 현재 알츠하이머에 걸려 점차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딸입니다. 그리고 그 딸을 위협하는 새로운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가 등장합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늙은 전직 연쇄 살인범은 새로 둥장한 현재의 연쇄 살인범으로부터 딸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기억은 계속 사라집니다. 현재의 연쇄 살인범은 어느 순간 딸과 가까운 연인이라고 나타납니다. 주인공의 알츠하이머 증상이 더 진행되면서, 더 많은 기억을 잃어가고 어느 순간 연쇄 살인범 얼굴 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주변의 메모와 잊혀진 기억을 조합해서 딸을 지키려 안간힘 씁니다. 점차 딸에게 접근하는 현재 연쇄 살인범의 존재와 딸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주인공을 압박합니다. 여기까지가 스포를 배제하는 최대한의 줄거리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현재 연쇄 살인마가 딸에게 접근하는 설정과 계속 기억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딸을 지켜야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설정이 소설의 긴장감을 높입니다. 사이코패스는 소설의 긴장감을 높이는 요소이고 절박함을 강조하는 요소입니다. 사실 이 책은 “살인자의 기억법“이라기 보다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법“이 더 맞습니다.
“메멘토”와 “오! 수정”
이 소설을 읽으며 영화 “메멘토”와 “오! 수정”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메멘토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0년작 스릴러로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의 살인 사건을 시간의 역순으로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과거의 내가 기억을 상실한 미래의 나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그 증거를 이용하여 위협으로 부터 탈출하는 내용입니다. 메멘토가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사건의 원인을 찾아가는 구조인 반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메멘토와 정반대의 구조를 갖습니다.
“오! 수정”은 3명의 주인공(이은주, 정보석, 문성근)이 서로의 관계를 각자의 시각에서 다르게 묘사하는 영화입니다. 각 주인공의 시각으로 동일한 이야기를 세 번 반복합니다. 서로의 입장에 따라서 같은 상황 완전하게 다르게 묘사합니다. 같은 상황을 완전히 다르게 얘기하지만, 세 주인공 중에서 누구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과거 기억을 자기합리화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스토리가 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주인공인 알츠하이머 환자는 딸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기억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과 과거에 남긴 메모로 상황을 꿰어 맞춰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에 오류(착각)가 발생하게 되고, 그 오류로 인해서 무언가 빗나가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주인공의 기억 조각은 자기합리화의 과정에서 변질됩니다.
이 책의 매력
“살인자의 기억법“은 단문으로 구성되고, 전개가 매우 빠릅니다. 김영하 작가는 사이코패스 알츠하이머 환자의 독백을 간결한 문장으로 담았습니다. 문장은 촘촘하지 않고 여백을 최대한 살리고 있습니다. 짧은 문장과 여백은 사이코패스의 냉소적인 느낌과 어감을 살려줍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 환자가 어떤 상실감을 느끼는지를 고민할 기회를 줍니다. 기억 상실이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게 만드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며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와 일반인은 집착하는 대상이 다를 뿐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에 대한 전문가의 예상은 잘못된 선입견 처럼 보입니다. 살인을 책으로 배운 전문가에게 냉소를 보내는 사이코패스의 모습과 현실에서 비지니스를 책으로 익힌 컨설턴트의 보고서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실무 담당자의 모습은 매우 비슷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자기합리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오! 수정”에서 과거 기억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자기합리화하는 과정은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잊혀진 기억을 꿰맞추는 알치하이머 환자의 자기 합리화와 정말 비슷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가장 큰 매력은 마지막 10페이지의 반전입니다. “유쥬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급 입니다.
마치며
결말을 모르시는 분들은 결말까지 빠르게 읽고, 꼼꼼하게 다시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첫 번째 속독에서 사이코패스가 생각하는 방식, 약간의 스럴러 그리고 마지막 반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꼼꼼하게 읽는 과정에서 김영하 작가가 여러 가지 함정 그리고 김영하 작가가 사이코패스의 독백을 만들기 위해서, 메소드 연기를 하면서 살았을것 같내요.
결말을 아시는 분은 반전의 묘미를 느낄 수는 없겠지만, 정독하는 과정에서 사이코패스와 알츠하이머 환자에 대한 다른 느낌 그리고 여러 숨겨진 부비트랩을 찾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제 경우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